고구려와 고려의 국호문제 ㄴ토론

학문적인 용어 변경
 

고구려와 고려 이 국호문제는 단순히 학술용어 변경문제라기 보다는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한 한 국가의 정체성존중여부와도 직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삼국사기 편찬자들(이하 김부식)이 어떤 기준으로 이러한 구분을 했는지는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살짝 그 의도가 보이긴 합니다. 삼국사기는 궁예왕이 국호를 고려로 했단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고 고구려가 후기에 이르러 그리고 멸망 이후에도 고려라고 불린 흔적들을 모둔 고구려로 바꿨습니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김부식은 태조 왕건의 행적을 염두 하여 궁예왕이 국호를 고려로 했단 사실을 은폐한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고구려와 고려로 구분을 한 까닭은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유학자인 김부식이 바라봤을 당시의 통일고려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비추어 볼 때 고려 계승성을 축소하여 사대를 충실히 하는 현 통일고려와 사대를 게을리 하여 멸망당한 이전의 고려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잖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음 굳이 그렇게까지 구분을 둘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다시 말해 김부식은 임의로 고구려와 고려를 구분 짓고 궁예왕이 국호를 고려로 칭했던 사실을 은폐한 이유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 통일고려정부의 편의만을 위한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구려가 고려로 왜 국호를 바꿨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국호를 바꾼 주체인 태왕과 위정자들은 이전의 고구려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 포부를 갖고 국호를 고려로 바꿨을 것이고 새로운 국호인 고려로 천년만년 불리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왕과 위정자들의 바람대로 고려라는 국호로 불렸고 멸망 이후에도 긴 세월동안 후국을 자처한 이들이나 외국들에게 꾸준히 고려로 기억됐습니다. 이름은 그 성격상 자기정체성과 연결되며 타인이 불러줄 때 그 존재성이 입증되지요.(김춘수의 꽃이 생각나는군요.ㅋㅋ) 그러나 삼국사기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고려로 불리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지금에 이르게 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김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런 구분을 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는 새로운 의지를 갖고 고구려에서 고려로 국호를 바꾸고 고려로 불리고 기억되기를 바란 고려인들의 의도를 무시한 처사로 볼 수 여지도 있습니다. 기껏 이름을 바꿨는데, 불리지 않는다면 그 의미가 없지요. 앞서 말했듯이 이름은 거명됐을 때 진가를 발휘하니까요. 물론 국호가 중첩 됐을 때 혼란을 피하기 위한 시대구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변화를 줘야 함은 당연합니다. 김부식이 적어도 촉한이니 유송, 전진, 북위, 남송, 전한 이런 국호들처럼 정체성에 크게 훼손을 주지 않고 존중을 해주는 선에서 구분을 해줬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고구려가 고려로 개명한 사실을 삼국사기에서 거의 완전히 지우다시피 해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삼국사기는 상당한 권위를 갖게 되면서 고구려가 후기에 들어 고려로 국호를 개명한 사실이 흐려진지 오랩니다. 조경철 교수가 지적했듯이 현대에 이르러서도 김부식이 만든 구분의 타당성 여부에 거의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따른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현재 김부식의 일방적인 의견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아는 한 현재 고구려가 고려로 국호를 바꿨다는 사실은 고대사학자나 고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 말고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당장 표준인 국사 교과서에도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기재하지 않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태조 왕건이 고구려에서 구자를 뺀 것으로만 알 뿐입니다.

용어변경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고 성급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동의합니다. 저 역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문제제기 선에서 아주 조금 진도 나간 수준이지요. 그러나 고구려, 고려 국호 문제도 충분히 논할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과정을 일절 거치지 않은 채 김부식이 임의로 (성급하게?) 기존의 용어를 변경한 것을 따른 것 역시 성급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학계에서 고구려가 고려로 국호를 바꾼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이미 고착화 됐다는 이유로 그냥 쓰던 대로 쓰자는 생각은 너무 안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 고구려라는 국호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면 지금이라도 김부식식(...) 구분의 타당성 여부를 확실히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전고려, 후고려는 어제 다른 분과 논의하면서 나온 얘기인데,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자는 의미에서이지 저 역시 크게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앞글에도 적었지만, 추모왕- 고려, 궁예왕- 태봉, 태조왕건- 통일고려로 용어를 변경하는 게 낫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중원의 사례를 참고 한다면 전고려, 후고려도 굳이 안 될 이유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해동고승전 같은 경우 이러한 중원의 사례를 참고해서인지 구분을 前고려로 표현한 예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매번 적극적인 자세로 토론해주시는 여휘(편의상^^;)님께 감사드립니다.


덧글

  • zerose 2012/04/22 23:10 #

    이걸 보니 역시 김부식옹의 빠와가 느껴집니다.
  • 에레메스 2012/04/23 00:25 #

    구삼국사만 해도 고려본기 이랬는데, 김부식옹의 삼국사기 편찬 이후부터 지금까지............ㅋㅋㅋㅋ;;;;;;;;;;;;;;;;
  • 솔까역사 2012/04/23 00:18 #

    그런데 궁예가 국호를 고려로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 나옵니까?
  • 에레메스 2012/04/23 00:25 #

    삼국유사 왕력에 901년 궁예가 국호를 고려로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솔까역사 2012/04/23 01:09 #

  • Falmehawk 2012/04/23 02:00 #

    궁예가 "고려"를 세웠다고 하면 궁예는 어쩔 수 없이 고려의 1대 국왕이 되고,
    궁예가 고려의 1대 국왕이 되면 자연스럽게 왕건의 위상은 손상이 되고, 찬탈자라는 인식을 만들 수 있지요.
  • 에레메스 2012/04/28 01:34 #

    김부식은 말씀하신 상황을 상당히 경계하여 삼국사기에서 고려라는 국호를 은폐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연같은 경우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지만...ㅋㅋ;;
  • 블레이드 2012/04/23 09:12 #

    여기서 홍대 김태식 교수가 주장한 4국시대론이 떠오르는데. 당시 삼국 말고도 가야가 존재했다는 점을 모르는 전문가는 없지요. 그런데 왜 사국시대라고 안하고 삼국시대라고 쓰느냐? 나라 숫자 셀 줄 몰라서 그런 건 아니죠. 잘못 바꾸었다가는 더 심한 혼란을 만들게 되니까. 말꼬리 잡자면 사국시대라고 해도 어폐는 엄청 나오는데, 굳이 헛갈리게 바꿔놓는건 전문가라는 사람들 말장난에 혼란만 빚게하는 결과가 나오니 알면서도 방치한 겁니다.
  • 야스페르츠 2012/04/23 10:30 #

    어차피 국호를 비롯한 호칭들은 후대의 시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순리(?)죠. 그리스를 그리스라고 부른건 로마인들의 시각일 뿐, 당대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헬라스라고 불렀듯이 말입니다. 게다가 세계 각국의 언어가 다르다보니 번역에서 이상한 국호가 나오는 경우도 셀 수조차 없을 정도니... 어느 정도 성찰은 필요하겠지만 굳이 고구려를 고려로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2/04/23 11:15 #

    에레메스님이 어떤 의도에서 이 부분을 언급한 것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

    다만, 앞선 포스팅과 지금의 포스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려로 불러야만 한다~의 당위성이 다른 이들에게 공감대를 얻기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김부식의 그러한 의도도 추정은 가능하지만 어디까지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며, 고려보다 고구려가 상대적으로 안 좋은(?) 시각에서의 용어라는 에레메스님의 생각도 저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고구려가 국호였지만, 그 당시에도 고려라고 부르는 이가 있었을 것이며 어느 순간 고려로 국호가 바뀌었지만 고구려라는 호칭을 썼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이건 모르는 거죠).

    더불어 태왕호는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보면 미천왕 시절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상당히 이른 시기(4세기 전반)부터 썼다고 보여지지만, 고려라는 호칭이 그즈음부터 쓰였다고 볼 수는 없을 듯 싶습니다. 그말인즉슨 태왕호를 쓰면서 국호가 바뀐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며, 설사 광개토호태왕~장수태왕 시절 국호가 바뀌었다고 해도 그 당위성이나 이유를 설명할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겁니다(개인적으로는 차라리 태왕호 쓰면서 군주의 위상이 바뀌자 국호도 바뀌었다~라는 주장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즉, 우리는 지금 고구려에서 고려로 국호가 바뀌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왜 등은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하나의 주장을 위해서는 적어도 육하원칙에 의해서 근거를 제시해야만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빈약한 것이죠. 만약 학계의 어떤 이가 위와 같은 주장을 하면서 고려로 바꿔야 한다~고 하면 '확실한 근거 있냐?'라는 답변 정도로도 충분히 반박 혹은 무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계에서 새로운 용어, 새로운 편년 등을 제시하는 논문은 항상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만 하는 것이죠.

    하나 예를 들어보이겠습니다.

    최종택 선생님의 최근 논문을 보면 그간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도 등지에서 확인된 고구려'식(式)' 횡혈식석실분을 고구려 횡혈식석실분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남들이 보면 '뭐야? 별거 아닌데, 저걸로 무슨 논문을 써?'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엄연히 다릅니다. 과거 관련 물질자료가 많지 않았을때에는 고구려 것 같긴 한데, 비슷하지만 확실하진 않고, 그럼 뭐라고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을 누구나 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점차 발굴사례가 증가하고 유물과 유구에 의한 편년 및 분류가 가능하다보니 자신있게 '고구려 것이 맞다!'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마찬가지로 경기도 일대에 지금이야 보루가 많으니 다들 그게 고구려 보루다~라고 알고 있지만 구의동보루가 처음 발견될 때만 해도 백제의 빈전장 시설인 줄 알았습니다. 고구려 유적이 한강 북안에 있다는 생각을 못 했을 때니깐요. 당연히 거기서 나온 토기도 고구려 토기로 불리지 않다가 나중에서야 구의동보루가 고구려 보루고, 몽촌토성에 나온 토기들도 고구려 토기라는 것이 밝혀져 정식 명칭을 얻게 된 겁니다.

    문헌사학과 고고학은 살짝 다르지만...이처럼 용어를 바꾸거나, 용어를 공인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에레메스님의 주장 갖고는 너무 위험하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만, 그 문제성을 자꾸 지적하고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의식적으로 기억하게끔 할 필요는 있겠죠. 그래서 논문을 보면 집필자들이 각주에다가 자그맣게 문제를 제기하는 선에서 논지를 정리하는 것일 겁니다. 괜히 무리한 주장해서 두들겨 맞을 이유는 없으니깐요. 이상입니다. ^^
  • 에레메스 2012/04/28 15:23 #

    답변드렸습니다.^^
  • 2012/05/12 09:5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에레메스 2012/05/12 20:44 #

    http://cafe.daum.net/alhc/51q2/6043

    형들 얘기 듣고 나 지금은 많이 설득(?)돼서 어떻게 용어 정의를 하면 혼선을 최대한 줄일까에 중점을 두고 고민 중이야! ㅋㅋ

    솔직히 그 고구려, 고려 구분에 있어 지금 사람들에게 얻고 있는 공감대라는 것도 어떤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 아닌 김부식 개인의 구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기억의 답습이라서 뭔가 더 힘든 것 같아.. 차라리 어떤 논리를 갖춘 것이라면 반론이나 비판 이런 걸로 할 수도 있겠는데, 이건 그런 차원의 것을 넘어선 암묵적 동의라는 수백년의 세월 동안 축적된 일종의 권위 같기도 하고..

    뭐, 통일신라시대라는 시대구분 용어야 생긴 것도 껏해야 수십년 정도고 어느 정도 논리를 갖춘 용어라서 남북국시대로 변경되는데 있어 좀 더 수월했고 시간도 10년(.......) 밖에 안 걸렸지만..;;

    무튼 만일에 소수 학자와 내가 암만 비판하고 대안제시해도 그에 대한 대답이
    "용어 잘못된거 앎, 근데 그렇다고 지금 꼭 바꿀 필요가 있음?"
    라는 반응이 많을 거고.. 실제 또 그렇고..
    이 문제는 비판과 새로운 용어에 대한 대안제시의 문제라기 보다는 새로운 용어로 굳이 바꿔야 하는 당위성 여부의 문제니까..(이게 형들이 지적한 그 당위성이 맞나 싶네ㅋㅋ;;)

    비약하자면 뭐랄까 실체가 없는 관념과의 싸움(?) 김부식과의 싸움? 같기도 하고..ㅋㅋㅋㅋㅋㅋ

    동정여론을 구축해야 하나ㅋㅋㅋㅋ 김부식이 빼앗은 이름 돌려달라고ㅋㅋㅋㅋㅋ

    음..

    링크 글은 내용도 좋고 다 고개끄덕거리는 한데, 마지막 부분은 이해가 잘 안 돼..ㅠㅠ
    현재 한국사의 정통은 삼국사기 관점에서 벗어나서 통일신라 뿐만이 아니라 남북국시대로 발해까지 쳐주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삼국사기가 한국사의 정통체계를 확립했다고 단언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아닌가 싶어. 너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한 게 아닌가 싶은..ㅋㅋ 물론 남북국시대란 게 명목상일 수도 있긴 하지만..ㅋㅋ;;

    그리고 삼국사기 때문에 부여, 가야에 대한 연구도 효과적이라기 이뤄질 수 있었다고 생각은 동의 못하겠어. 삼국사기 속 부여 기록은 고구려와의 관계 속에서 남은 거고 가야제국은 신라와의 관계 속에서 남은 것으로 처음부터 한계가 있다고 여겨져서.. 효과적이라는 보다는 상대적으로 그나마가 아닐까 싶네..ㅋㅋ 아, 이 부분은 형의 차악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듯...!ㅋㅋ

    무튼 쌩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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