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보다 고려로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한국 고대사

삼국 중 하나인 고구려가 평양천도 이후 국호를 고려로 변경했다는 주장은 통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려라는 국호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저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후기에 이르러서 국호를 고려로 변경했음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에 있었던 발표에서 조경철 교수는 고려로 개칭한 시기를 통설보다 앞선 시기인 광개토태왕 원년 내지 장수태왕 원년일 가능성을 꺼냈다. 조경철 교수는 역사는 1차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역사 주체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며 이를 단순히 고구려에서 고려로 국호를 변경했다는 논의차원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고려로 바꾸어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조경철 교수의 국호 변경 시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고구려 대신 고려로 불러야 한다는 견해에는 상당부분 동의하여 평소 글을 쓸 때도 고구려가 아닌 고려로 쓴 적이 적잖이 있는 편이다. 따라서 이하 글에서 추모왕이 세운 국가는 고려, 왕건이 세운 국가는 통일고려로 표기함을 밝혀둔다.

평양천도 이후 고려는 현존하는 당대 금석문상에서 자국의 국호를 고려로 표기하였음은 물론이거니와 역대 중원의 국가들과 일본도 거의 고려라고 불렀으며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로 자처한 적이 있으며 후삼국, 왕건이 세운 통일고려도 추모왕이 세운 국가를 고려라고 불렀다. 왕건은 추모왕이 세운 고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려로 한 것으로 그가 임의로 고구려에서 구자를 뺀 것이 아니다. 태봉의 궁예왕도 처음 나라를 세울 때 추모왕이 세운 고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려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후고구려라는 국호는 후대인들이 임의로 만들어낸 표현에 불과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계가 아닌 KBS 사극 태조 왕건에서 궁예가 국호를 고려로 한 사실을 정확히 고증한 바 있다. 최치원이 고려 운운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 때도 추모왕이 세운 국가를 고려라고 불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즉, 고려는 고구려로 불린 세월보다 고려로 불린 시기가 훨씬 길었으며, 멸망 시에도 고구려가 아닌 분명히 고려로 멸망했다. 그러나 지금 고려라는 국호를 두고 왕건이 세운 고려만 생각할 뿐 추모왕이 세운 나라는 고구려로만 기억된다.

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1차적인 원인을 통일고려 중기에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추모왕이 세운 고려와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를 구분하기 위해 임의로 전자는 고구려, 후자는 고려로 임의로 썼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이 과정에서 김부식은 유교적 관점을 바탕으로 자국의 시조인 태조 왕건에게 진정한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하여 궁예가 국호를 고려로 했다는 것을 고의적으로 은폐하기도 했다. 김부식의 이러한 구분에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도한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사람은 저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으며 김부식 같은 경우 구분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여 이러한 그의 인식을 삼국사기에 반영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김부식의 생각이 통일고려의 정부나 통일고려 전시기의 입장을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통일고려 말 고승인 일연 같은 경우 삼국유사를 쓸 때 추모왕이 세운 나라를 고려로 표기했다.

조경철 교수의 지적처럼 추모왕이 세운 나라를 고구려라고 못 박은 것은 김부식 한 개인의 입장일 뿐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김부식의 이러한 한 개인의 입장이 현대에까지 반영된 원인은 한국 고대사에서 삼국사기가 갖는 절대적인 위상이 아닐까 싶다.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이 고구려라고 못 박았기에 지금 현대에 이르러서도 고구려라고 부르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백범 선생 같은 경우 김창수에서 김구로 이름을 바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김구라고 부른다. 즉, 사람들은 어느 한 사람이 이름을 바꾸면 바뀐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추모왕이 세운 고려는 고구려로 불리고 있을 뿐 고려로 불리지 않고 있다. 국명을 고려로 변경했고 고려로 불린 기간이 훨씬 긺에도 불구하고 변경 전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굳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 학계에서는 삼국사기에서 추모왕이 세운 나라는 고구려, 태조 왕건이 세운 나라는 고려로 구분을 지은 김부식 한 개인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삼국사기가 한국 고대사에 있어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사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현재 한국 학계에서 김부식 개인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따를 의무나 당위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분명 안일한 태도이며, 문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조경철 교수의 지적처럼 단순한 논의사항이 아닌 실제적으로 고려라고 불러야 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추모왕이 세운 국가는 고려, 궁예가 세운 국가는 태봉, 왕건이 세운 국가는 통일고려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삼국시대의 고려는 평양천도 이후 고구려에서 고려로 변경했으며 후삼국시대의 궁예는 처음에 국호를 고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후)고려로 했으나, 나중에 마진, 태봉으로 변경했다고 명시해주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덧글

  • Warfare Archaeology 2012/04/21 22:04 #

    아~여기에도 올리셨군요. ^^ ㅋㅋ 다시 한번 잘 봤습니당~
  • 에레메스 2012/04/21 22:32 #

    감사합니다! ^^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ㅋㅋㅋ 괜찮으시다면 페북에서 본 고대 아이유 분도 함께 오심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Warfare Archaeology 2012/04/22 10:50 #

    오잉?? 고대 아이유라...제 주변에 그런 여인네는 없는디. ㅋㅋㅋㅋ 누굴 보고 그러시는지 ㅋㅋㅋㅋㅋ 암튼 다음주에 뵙겠습니당~
  • TheodoricTheGreat 2012/04/21 22:26 #

    고구려 銘 불상도 나온다는데 http://ekrrkdwjd.egloos.com/2803448 아직 그렇게 부르는게 시기상조일까요? 일단 그렇게 되면 중세의 고려랑 구별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 에레메스 2012/04/21 22:38 #

    만일 고려로 부르는 것으로 정해진다면 기유년 대고구려국 불상 같은 경우 기존의 방식에 따른다고 할 떄 기유년 고려불상으로 불리겠지요. 중세의 고려 같은 경우는 본문에 거론한 것처럼 통일고려나 아니면 전한(서한), 후한(동한)처럼 전고려(북고려),후고려(남고려) 이런 식으로 여러 대안들을 마련하면 좋을 듯 싶습니다.
  • zerose 2012/04/21 22:51 #

    역시 구별이 가장 큰 문제일 듯 하네요. 명칭을 갑자기 갈아버릴 수도 없으니.
  • 에레메스 2012/04/21 22:59 #

    뭐 김부식 같은 경우 보편적인 명칭이었던 고려를 갑자기 갈아버렸으니ㅋㅋㅋ
    사실 학계가 가장 기본적으로 행했어야 할 명칭 문제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까닭에 문제가 더 터진 감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문제로 추모, 주몽, 동명왕도 있지요. 아무튼 국호 문제는 문제를 꺼내는 선에서 그칠 게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겠지요.^^
  • zerose 2012/04/21 23:02 #

    김부식은 문관 왕고 레벨이었으니 밑에 것들은 까라면 까야죠....
  • 에레메스 2012/04/21 23:34 #

    아... 김부식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블레이드 2012/04/22 10:13 #

    그러면 고조선도 조선이라고 해야 하고 후백제도 백제라고 해야 하는데...
    조경철 선수가 너무 고지식한 원칙을 가지고 논문이라고 내는데 좀....
  • 블레이드 2012/04/22 10:13 #

    전고려라 부른다 해도 어차피 후대에 붙인 이름이기는 마찬가지인 거고...
  • 에레메스 2012/04/22 21:34 #

    국호가 중첩되니 구분을 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백제와 후백제, 조선과 고조선은 혼란을 피하기 위한 구분으로 이해가 되지만, 고구려와 고려의 구분은 단순히 혼란을 피하기 위함 보다는 김부식의 정치성이 다분한 구분으로 생각되거든요.^^;;ㅋㅋ 최소 삼국사기식 구분에 타당성여부를 묻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여 문제기를 해본 것입니다. 평소 이 문제에 대한 제 생각과 조교수님의 생각이 같기도 하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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