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고당전쟁시 고려(고구려)가 동원한 병력의 규모 한국 고대사

이하 3차 고당전쟁시 전투가 벌어진 지역


혈성: 알 수 없음.(삼국사기 잡지 지리 참조)

은성: 알 수 없음.(삼국사기 잡지 지리 참조)

사성: 알 수 없음.(삼국사기 잡지 지리 참조)

신성: 알 수 없음.(양당서 고려전과 자치통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조 참조)

신성 휘하 16성: 알 수 없음.(양당서 고려전과 자치통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조 참조)

요수 주둔 병력:
15만 명(양당서 계필하력 열전 참조)

신성 구원군: 알 수 없음.(양당서 고려전과 자치통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조 참조)
 → 5만 명이 전사.
비고- 5만 명이 전사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고구려가 동원한 병력은 10만 명 내외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신성 구원군은 요수 주둔 병력인 15만 명일 가능성이 큼.

남소성: 말갈병 수 만 명(양당서 계필하력 열전 참조)

→ 1만 명이 전사.

비고- 초전에 천남생과 함께 자진항복했었으나, 다시 반당으로 돌아섰다가 계필하력에 의해 함락됨. 기본적으로 말갈은 정병이 3천 명 정도인데, 남소성에 수 만 명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상당한 출혈을 한 것을 의미함. 이와 관련하여 고구려 멸망 이후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불열, 백돌, 안거골부는 남소성 전투에서 무리하게 동원되었기 때문에 존재감을 상실했을 것으로 추정됨.

목저성: 알 수 없음.
비고- 초전에 천남생과 함께 자진항복했었으나, 다시 반당으로 돌아섰다가 계필하력에 의해 함락됨.

창암성: 알 수 없음.

비고- 초전에 천남생과 함께 자진항복했었으나, 다시 반당으로 돌아섰다가 계필하력에 의해 함락됨.

이름 미상의 5성: 알 수 없음.(양당서 계필하력 열전 참조)

비고- 계필하력이 남소성의 말갈군 1만 명을 죽인 여세를 몰아 남소성과 더불어 8성을 함락시켰다고 함.

평양성 수군: 알 수 없음.

→ 평양성의 수군이 별장 풍사본의 함선을 격파함.

압록진 배치병력: 알 수 없음.

→ 연남건이 압록수에 병력을 배치하여 당군의 남하를 막음.

안시성 인근 병력: 3만 명

비고- 안시성 아래에 있던 학처준 군을 엄습하였으나, 학처준이 방어함.

부여성: 1만 명+@(자치통감 참조)
비고- 부여성 함락시 1만 명이 전사.

부여성 구원군: 5만 명(신당서 고려전과 자치통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조 참조)
→ ① 3만 명이 포로가 되고, 5천 명이 전사.(신당서 고려전 참조) ② 3만 명을 참획함.(자치통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조 참조)

대행성: 알 수 없음.

욕이성: 알 수 없음.

압록책: 알 수 없음.

평양소성: 알 수 없음.

평양성: 알 수 없음.

 

3차 고당전쟁시 고구려가 동원한 병력은 요수 주둔병과 신성 구원군이 중복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하고도 최소 25만 명이다. 전투는 치뤘지만, 동원한 군사의 숫자가 기재되지 않은 남소성, 평양성, 신성 휘하 16성 등 본문에서 거론한 많은 성들의 병력과 본문에서는 거론하지 않은 요동성, 건안성, 부여성 휘하 40성 등 전투없이 무조건 항복을 한 수 많은 성들에 있었을 병력의 수치 등을 감안한다면 더욱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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