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태왕의 북위 공격 한국 고대사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라는 명말청초(明末淸初)에 쓰여진 역사지리서에 의하면 광령(廣寧)은 후위(後魏) 즉 북위(北魏) 때 고려(高麗: 高句麗)에게 빼앗겼다가 당(唐) 대에 들어서 다시 그 땅을 다시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광령은 현재는 북진(北鎭)으로 불리며 후연(後燕)과 북연(北燕) 때는 숙군성(宿軍城)으로 불렸으며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이 후연을 공격할 때 일시적으로 점령했던 곳이기도 하다. 독사방여기요가 비록 한참 후대 사료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근거없이 쓰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고려가 북위를 공격한 것이 기재 된 사료도 있고, 북진 일대에는 고려판성(高麗坂城)이라는 고려의 지명도 있다고 할 만큼 이 기록을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일 고려가 북위를 공격하여 북진 일대를 점령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시기는 언제일까?

화북에 북위가 존속해 있을 무렵 고려는 장수태왕(長壽好王), 문자명치호태왕(文咨明治好太王), 안장태왕(安藏太王), 안원태왕(安原太王)이 다스리고 있었다.
장수태왕 때부터 문자명치호태왕대까지 고려는 북위와 마찰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체적으로 활발히 교류를 하며 그럭저럭 잘 지내는 편이었다. 또한 499년에는 북위가 의현(義縣)에 만불당 석굴을 조성할 정도로 요서(遼西)에 세력을 뻗쳤기 때문에 이 두 군주가 다스리던 시기에 고려가 북위를 침공해서 북진 일대를 빼앗았다고 보기 어렵다. 안원태왕 대의 고려는 북위와 마찬가지로 내란에 시달렸으므로 역시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안장태왕 대의 고려와 북위의 관계는 좀 다르다.

문헌 기록상 안장태왕 대의 고려와 북위는 523년에 단 한 차례의 교류만 있을 뿐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류가 없다고 안장태왕 대에 북위를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다는 식의 논리는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요령성 조양 일대에서 발견 된 한기 묘지명(韓 墓誌銘)에 의하면 안장태왕이 북위 효명제(孝明帝) 효창(孝昌) 연간인 525~528년 사이에 속민이었던 거란(契丹)을 시켜 북위의 영주(營州)를 공격하여 평주사마자의참군(平州司馬諮議參軍)이었던 한상(韓詳) 일가를 고려로 데려왔다는 내용이 있어 단편적으로나마 안장태왕이 북위를 공격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같이 북위와의 교류가 급감하고 고려가 북위를 공격할 수 있던 원인은 북위가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안장태왕은 이 상황을 방관하지 않았다. 북위의 혼란은 고려에게 있어 영토와 인구를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당시 영주 일대는 524년 10월에 취덕흥(就德興)이란 인물이 반란을 일으키고 연왕(燕王)을 자칭했다가 529년 11월 2일에 북위 중앙정부에 항복할 때까지 북위의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취덕흥은 526년에 평주(平州: 현 하북성 노룡현 일대)를 함락시켜 그 자사인 왕매노를 죽일 정도로 수 년 간 북위의 동북방에서 나름 큰 세력을 형성했었는데, 그랬던 그가 529년에 다시 중앙정부에 항복했단 것은 효창 연간에 있었던 안장태왕의 영주 공격이 주원인일 가능성도 있다. 안장태왕의 영주 공격 전후로 고려가 북진 일대를 점령했기 때문에 독사방여기요와 같은 기록이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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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바다를 달리는 갈매기 2010/06/17 23:40 #

    북위와 고구려의 파워게임이 단순히 외교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군요. 저번에 레폿을 쓰느라 봤던 한 논문에서 혼인문제와 관련된 고구려 vs 북위의 외교적 파워게임을 매우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당시 화북의 강자였던 북위를 거의 주무르다시피 하던 고구려였는데, 군사적으로도 북위를 압박했다니, 놀랐습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고구려의 북위공격이 어느정도의 규모였는지가 궁금하네요. 당시 남부와 북부의 전선을 유지하는데 힘썼을 고구려가 북위까지 공격했다니, 대규모 전면전이었을 가능성은 다소 적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 에레메스 2010/06/19 14:07 #

    당시 북위의 혼란이 상당했으니까, 전면전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북위가 남조나 토욕혼, 유연과는 수 차례 전쟁을 벌였으나, 유독 고려와의 전쟁은 꺼리는 경향이 있고 고려가 북위를 공격하거나 도발한 적은 있어도 그 반대 사례는 전무합니다.
  • 바다를 달리는 갈매기 2010/06/19 17:39 #

    과연 북위가 고려의 '제대로된' 상국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팍팍 드네요ㅋ
    뭐, 예전부터 조공이고 뭐고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ㅋ
  • 두막루 2010/06/19 18:10 #

    사실 동아시아 역사 전반적으로 중국이 '제대로 된' 상국이었던 적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괜히 '중화사상으로 덧칠된 중국 사서'라고 부르는게 아니죠. 그런데 문제는 중국은(민간 차원이라면 모르지만 적어도 관변사학은) 옛날만이 아니라 지금도 중화사상에 찌든 기록을 비판할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피해의 당사자인 주변국 사람들이 나서서라도 비판하고 주변국 입장도 되살려내서 동아시아 역사를 복원해내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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